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막골’은 어린 아이들처럼 막 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어떠한 이념과 대립도 없는 아이들처럼 사는 마을 사람들이라, 남북이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오순도순 웃으며 지냈다. 그래서가 아닐까, 동막골에 발을 디딘 국군과 인민군이 결국에는 우연히 만난 어린 아이들 마냥 허물없이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은.


 동막골에서 우연히 만난 국군과 인민군들은 서로 총을 겨누고, 수류탄을 쳐들며 대립한다. 하지만 날을 새고, 수류탄에 마을의 옥수수 창고가 터지면서 한바탕 대치가 끝난 군인들은 한 방에 뒤섞여 곯아떨어진다. 국군인 표현철은 여전히 인민군들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으나, 마을 사람들이 두 무리를 구분 짓지 않고, 북쪽 마을, 남쪽 마을에서 들른 아이들처럼 여기면서 모두가 함께 수확을 하며, 비어버린 마을 창고를 함께 채워나가면서 끝내는 이념이 다른 적군이 아닌, 사람으로 만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코 넘나들 수 없을 것 같던 이념의 벽이, 아픈 기억과적대심의 벽이, 이곳 동막골에서는 허물어진 것이다. 결국에는 같은 사람이기에, 동막골 사람들처럼 동화된 것이다.



 마을의 옥수수 창고를 군인들이 터뜨린 탓에, 마을에는 손님을 대접할 음식조차도 부족해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수확 철이었고, 군인들이 일손을 거든다. 모두가 도란도란 돕고 땀 흘린 끝에 결국에는 마을 창고를 가득 채웠다. 외부인들인 군인들이 보기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자그마한 창고였다. 그런데도 동막골 사람들은 창고를 채운 것을 기뻐하며 그들과 더불어 잔치를 벌였다.


 문상상은 창가를 부르고, 이런저런 타악기들이 신명나게 울린다. 여일은 춤을 추고, 아이들은 막 뛰어다닌다. 연합군 스미스는 카메라를 들은 채 하나하나 담아낸다. 지친 노모를 업어 부축한 스미스가 집으로 모신다. 한밤중에, 밝은 웃음소리가 고개를 넘는다.


"저들 좀 봐요. 참 행복해 보여요.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냉전 시대였다.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진영으로 넘어가게 되면, 민주주의 진영의 최전선은 섬나라이자 패망국인 일본이 된다.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러한 계산속에서 인천에 상륙한 연합군 소속의 스미스. 그가 바라본 동막골은 그런 곳이었다. 어떠한 손익이나 이념도 따지지 않고 그저 손님이니까, 민폐를 끼치더라도 부족한 식량을 모아 대접하고, 함께 새참을 먹고,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마신다. 대립이 없는 신비한 마을, 욕심 없이 소박한 신비한 마을. 이념의 대립이 없는 작가의 이상향, 우리의 소원.



 6.25 전쟁은 남북 간의 정치적인 이념이 서로 달라 분단된 상황 속에서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난을 가는 도중에 죽고, 민간인들의 마을이 연합군 내지 인민군의 엉뚱한 폭격으로 사라졌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운 양 측의 군인들은 어련할까.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병원과 학교가 무너졌다. 문화재가 망가지고, 역사에 뾰족한 파편이 박힌다. 그 파편은 오늘날까지도 아픈 상처를 긋는다. 그리고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무력은 큰 힘이다. 무력을 함부로 휘두른다면, 그에 상응하는 큰 책임을 짊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대개 생명으로 치러져왔다. 그리고 이는 아픈 역사를 기억되어, 오늘날까지 마음 깊이 대못을 박는다. 천부적인 생명의 가치를 무슨 수로 매길 수 있을까. 그 모든 이념과 사상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국군과 인민군이 연합하여 지키고자 했던 것이,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남이 보기에 너무나도 소박한 마을 창고를 채운 마을 사람들은 잔치를 벌였다.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때로는 열심히 이루어낸 것들이 하루아침에 ‘펑’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동막골의 사람들은 멱살을 부여잡고 엉엉 울다 주저앉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과 다른 그들을 포용하고, 용서하고, 함께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이루어냈다. 이것이야말로 동막골이 대립 없이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이고, 갈등이 해소되고 관계가 회복될 수 있었던 원인이고, 진정한 행복의 씨앗이 아닐까?



웰컴 투 동막골 (2005)

Welcome To Dongmakgol 
9.3
감독
박광현
출연
정재영, 신하균, 강혜정, 임하룡, 서재경
정보
코미디, 전쟁, 드라마 | 한국 | 133 분 | 200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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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영화가 아름답고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 방향이 현실과는 괴리감이 느껴져서 더욱 안타깝다. 사람의 생명이 이념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작은 마을이 아닌 하나의 국가가 과연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 없이 운영될 수 있을까? 또한 마을 사람들이 창고를 터뜨린 군인들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인명 피해는 입히지 않은 까닭도 있다. 우리들은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닐까. 이 의문은 글을 발행하고도 풀리지 않았다. 영화가 제시한 또다른 의문. 그리고 언젠가는 풀어내야 할 숙제. 이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ps2. 같이 읽기 : 2015/07/03 - [Jurnal] - 호국보훈의 달 기념 통일글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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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캄시 2015.06.05 08:46 신고

    오랜만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

1970년대 서울의 어느 신흥 마을에 노새를 생계 수단으로 연탄 배달을 하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곳은 골목 하나를 경계로 원래의 판잣집으로 이루어진 구동네와 문화주택이라며 2층짜리 슬래브 집들로 새로 지어진 새 동네로 나누어져 있다. 그 가족의 집은 구동네의 어딘가에 있다.

아버지는 노새에게 마차를 끌게 하고 그 마차에 공장에서 배달하라는 만큼 연탄을 싣고 배달하러 다니곤 했는데 주인공인 ‘나’ 또한 아버지가 배달을 나갈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어느 겨울날 여느 때처럼 연탄 400장을 마차에 싣고는 새 동네로 배달하는데 다른 때 같으면 힘 안 들이고 단번에 올라설 만한 고개인데도 그날따라 중턱에서 걸리더니 그 이상 오르질 못했다. 바닥에는 살얼음이 한 겹 살짝 깔려있어서 마차 뒤를 미는 ‘나’도 오히려 미끄러져 나갔으며 노새 역시 살얼음에 발자국만 애써 긁어놓을 뿐 도저히 오르지를 못했다. 사람들이 몇 명 지나갔지만 모두 쳐다보기만 할 뿐 도와주지는 않았다.

결국, 노새가 지친 탓에 연탄 더미는 무너지고 흘러내리는 마차에 질질 끌려가며 허우적대던 노새는 벌떡 일어나더니 순간적으로 도망쳐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저 꿈속에서 노새가 시장을 휘젓고 난장판으로 만들고선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나간 노새를 봤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찾아 나섰지만, 그저 목적지 없이 떠도는 것에 불과했다. 마치 길 잃은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가 결국 도착한 동물원에서 얼룩말을 보고서는 아버지의 얼굴이 노새와 닮았다고 생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새가 매번 무거운 연탄 마차를 짊어지고서는 가파른 골목을 오르듯이, 연탄 가루가 온몸에 앉아 속살까지 파고들었듯이 아버지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늦은 밤에 동물원을 나온 부자는 집을 향해 가던 중 대폿집에 들어가더니만 아버지는 ‘나’에게 안주를 밀어놓고 술만 거푸 마셔댔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이제부터 내가 노새다. 이제부터 내가 노새가 되어야지 별수 있니? 그놈이 도망쳤으니까. 이제 내가 노새가 되는 거지.”

 

하고서는 노새처럼 히힝 웃어댔다. ‘나’도 같이 웃었다. 즐겁게 집을 향해서 걸어오던 부자의 즐거운 생각은 집에 당도했을 때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노새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가게 물건들을 박살 내는 바람에 순경들이 집에 찾아와 아버지를 잡아가야 한다고 이르고 갔다는 것이다. 술이 깬 아버지는 한동안 멀뚱멀뚱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쓰적쓰적 어두운 골목길을 나섰다. '나’는 집을 나가는 또 한 마리의 노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그러고선 어차피 노새에게는 비행기가 붕붕거리고, 헬리콥터가 앵앵거리고, 자동차가 빵빵거리고, 자전거가 쌩쌩거리는 도시에서는 발붙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마리의 노새를 찾아 캄캄한 골목길을 향해 마구 뛰었다.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던 노새가 힘겨워할 때 그들은 무관심했다. 누구 하나 부자를 돕겠다고 마차를 밀어주지 않았으며 그저 구경거리로만 여겼었다. 마차를 벗고 도망친 노새를 부자가 쫓을 때도 그들은 여전히 무관심했다. 누구 하나 노새가 도망친 방향을 일러주지 않았으며 그저 구경만 했었다. 만약에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와서 마차의 뒤를 밀어줬다면 과연 어땠을까? 노새를 뒤쫓는 부자를 보고 노새가 도망친 방향을 일러줬으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노새가 그들의 가게 물건들을 박살 내고 그들을 다치게 했을까? 이 작품에서는 구동네와 새 동네의 주민들 간의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자주 묘사되는 것 같다. 구동네 아이들이 새 동네까지 와서 놀더라도 구동네 아이들과 새 동네 아이들은 끼리끼리 무리지어 놀 뿐이었으며 가파른 고개를 오를 때에도, 노새 두 마리가 그 가파른 고개로 인해서 곤란한 듯한 모습을 보일 때에도 그들은 그저 무관심으로 일괄했으며 가파른 고개를 빠져나와 도망치는 노새를 보고도 별꼴이라며 단순한 구경거리로만 압축시켰다. 한 가족의 내일이 걸린 문제인데 말이다.

비행기가 붕붕거리고, 헬리콥터가 앵앵거리고, 자동차가 빵빵거리고, 자전거가 쌩쌩거리고, 도시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노새에게는 그저 적응하기 벅찬 가파른 골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새 동네의 사람들에게 노새는 그저 구경거리로만 여겨질 뿐이다. 노새는 지금 당장이라도 짊어진 마차의 고단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럴 때 새 동네 사람들이 자빠지면 자빠지고 아니면 아닌 구경거리가 아닌 한 가족의 가장으로 여기며 관심을 가지고 마차를 밀어준다면 그 가파른 골목길이 조금이라도 더 완만해지진 않을까. 그 고단한 무게의 연탄 마차가 조금이라도 더 가벼워지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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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에게도, 과연, 아름다운 골목이었을까? 또는, 오를 수 있는 골목이었을까?

그 골목은 몹시도 가팔랐다. 노새가 연탄 마차를 홀로 짊어지기에는.


중학 교과서 소설 1

저자
김혜니, 김학선, 김인봉, 호승희, 김은자 지음
출판사
타임기획 | 2013-01-02 출간
카테고리
중/고학습
책소개
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2013학년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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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zanthia/807035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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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남시언 2013.08.25 09:08 신고

    잘 읽었습니다. 책 리뷰이군요. 이미지가 있었다면 좀 더 좋았을 거 같아요.^^
    좋은 주말되세요~

  2. BlogIcon 대한남아 2013.09.05 20:06 신고

    노새이야기가 요즘 세태를 너무나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했던까요?
    이웃을 사랑하던 어린시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삭막한 도시속에서 아래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세대에 태어난 아이들을 참 불행하다는 생각을 새삼 해 보게 됩니다.
    어린시절 이웃이 이사만 가도 온동네 사람이 나와서 이사를 거들어 주던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 BlogIcon 가람빛 2013.09.06 17:58 신고

      이웃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위치가 가까운 곳에 지내는 사람으로요.. 서로 무관심하다보니.. 아쉽네요.

  3. BlogIcon 나쓰메 2014.01.15 21:27 신고

    이미지가 있었으면 정말 더좋았겠네요 ㅎㅎ
    좋은글감사드립니다

    • BlogIcon 가람빛 2014.05.01 18:07 신고

      예 감사합니다^^ 이미지는 시간 날 때 적절한 것 찾아서 올려놔야겠습니다.

없던 행복마저 깨부순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의 철거 계고장.

난쟁이 아버지의 가족들이 기어코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살 입주권은 주어지지만 형편이 안 돼 사실상 유명무실.

분양 아파트는 58만 원, 임대 아파트는 30만 원, 또 15만 원의 보조금.

행복동 주민은 하나, 둘 입주권을 불법으로 팔아넘기기 시작한다.


욕망만 떠도는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야 한다는 지섭의 주장 덕분에

난쟁이 아버지는 달나라에 가겠다는 둥 꿈속에서 헤매게 되었다.

덕분에 두 형제가 아버지 대신 공장에 나가 일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절대 공장에는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있다.

어릴 적에 큰아들 영수가 친구 명희와 한 약속이다. 지키진 못했지만.


일의 양은 불어나고, 작업시간은 늘어나고, 쥐여주는 것은 희망뿐이다.

공원들이 원하는 건 희망이 아닌 무말랭이 반찬이 올라온 식탁이지만.

마치 반비례라도 되는 양 공장의 규모는 반대로 더욱 불어나기만 한다.

공장에 새로운 기계가 들어오지만, 공원들에 대한 대우는 더욱 줄어든다.


두 형제가 사장과 협상을 하려던 계획이 회의실까지 미리 샌 모양이다.

덕분에 협상은커녕 일거리를 잃게 된 것이다. 회의 끝의 결정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아파트 입주권은 처음보다 훨씬 더 뛰어오르게 되었다.

결국, 난쟁이 가족은 25만 원에 사겠다는 승용차를 탄 사나이에게 팔았다.

난쟁이 가족이 직접 벽돌을 나르며 지었던 애착이 담긴 소중한 집이다.

그리고 철거 기한을 넘겨버린 무허가 집이기도 하다. 결국, 철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와 여동생 영희가 사라졌다. 두 형제도 결국 못 찾았다.

영희는 기어코 입주권을 거래했던 그 승용차를 탄 사나이를 쫓은 것이었다.

결국, 영희는 사나이의 집에서 호화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영희는 그 투기업자를 마취시키고 입주권과 돈을 훔쳐 달아난다.

급하게 행복동 동사무소로 돌아와 아파트 입주 신청을 마치고 수소문하여

가족이 이사 갔다는 곳을 찾아갔지만, 아버지가 이미 자살하셨다는 것이다.


달을 향하여 까만 쇠공을 던지고서는 벽돌공장 굴뚝에 뛰어내렸다고 한다.

물론 영희와 형제의 분노의 대상은 여지없이 사회를 향하여 쏟아졌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영호가 말했다.

“그만둬.”

내가 말했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철거 계고장을 받아든 두 형제의 대화이다. 주객전도 아닌가?

난쟁이, 즉 약자를 보호해 주기 위한 장치는 일단 아니다.

법을 모르는 사람은 법이 지정해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법을 모르는 사람이 바로 약자가 아닌가? 그러므로 아니다.

정리하자면 “교육받은 자” 만을 보호하는 장치가 법이다.


“아버지는 악당도 못 돼. 악당은 돈이나 많지.”

 

첫째아들인 영수가 무능력한 아버지를 조롱하는 푸념이다.

악당은 돈이 많다고 했지만 뒤집어보면 돈 많으면 악당이라는 소리도 된다.

즉, 부유를 자손 대대로 물려받는 현대사회의 권력층을 지칭한 것 같다.

악당을 죽여 버리라는 영희의 대사도 어쩌면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약자를 무시하는 권력층에게는 절대 굴복하지 말자’


행복동의 주민은 정치인들의 거짓공약에 너무 많이 속아왔다.

그 권력층과 이런 사회에 대한 영희의 분노는 당연한 일이다.


난쟁이 아버지가 쏘아 올린 조그마한 쇠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질 것이다.

중력을 벗어나 달을 향한다는 것이 정말 그렇게 쉬운 일일까? 절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난쟁이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다 한번 기부단체가 만든 영상을 본 것 말고는 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법에게 보호받는 대신 삶의 터전을 빼앗긴 난쟁이의 목소리는 들어주었던가?

소설로서 읽게 되는 것 말고는 관심도 없었으며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공 하나 날리고 난쟁이는 결국 벽돌공장에서 자살했다.

만일 우리가 난쟁이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 주었다면 난쟁이가 자살했을까?

사람들의 관심이 잠시라도 그곳에 쏠렸다면 이런 억울한 일이 발생했을까?


난쟁이의 난쟁이로서의 억울함과 상처는 정치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아랫물이 탁한 것을 하나의 윗물에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한 줄기의 아랫물은 여러 줄기의 윗물이 모여 형성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결과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잘못도 있다. 난쟁이를 존중하지 않은 잘못, 무시한 잘못.

다른 곳에 책임을 돌리기 전에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난쟁이를 존중하는 것. 이것이 난쟁이가 바라던 달나라가 아닐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저자
조세희 지음
출판사
이성과 힘 펴냄 | 2000-10-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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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신선함! 2013.02.02 14:48 신고

    잘 보구 갑니닷 !!
    멋진 오늘을 보내셔요!!

  2. BlogIcon 남시언 2013.02.05 17:42 신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뭔가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네요!

  3. BlogIcon 쿨펀치 2013.07.08 15:57 신고

    좋은 정보 얻어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4. BlogIcon reddreams 2013.07.09 22:36 신고

    오랜만에 난쏘공 이야기를 보여가네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

  5. BlogIcon 한국인삼유통공사 2013.07.10 10:28 신고

    어릴적에 읽었던 책, 책장 한구석 지금의 가로가 아닌 세로로 된 책이 있을텐데.
    오랫만에 보네요.
    고전으로 오래 남았으면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 BlogIcon 가람빛 2013.07.16 02:59 신고

      덧글 감사합니다^^ 난쏘공이 1976년에 발표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벌서 40년 가까이 되었네요..

  6. BlogIcon 달방울 2013.07.15 08:58 신고

    읽으셨던 책들을 보니 가람빛님이 어떤 분이실지 가늠이 될 것 같아요. 책의 취향은 이래서 흥미로워요. 난쏘공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네요 중딩 때, 고딩 때, 대학생 때, 그리고 지금 살짝 볼 때 전부요-

    • BlogIcon 가람빛 2013.07.16 03:13 신고

      조세희 작가님은 1970년대에 표현의 자유가 많이 제한되서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작품을 구조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시점도 다양하고 예고도 없이 과거,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되었으니 이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면 뭔가 새롭게 느껴지거나 이해되는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나중에 시간나면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7. BlogIcon 박상현 2014.12.08 00:56 신고

    오늘 ebs에서 영화로 본 후 난쟁이의 의미가 무언가 생각하다가 서민.. 을뜻하는것은 알았는데
    교육받지 못한 서민이군요..
    배우고갑니다.

    • BlogIcon 가람빛 2015.01.21 17:28 신고

      오오 영화로도 나왔었군요. 나중에 봐야겠어요. 방문 감사합니다 :)

  8. 홍길동 2015.03.25 22:35 신고

    영희가 자기집 입주권을 사간 남자를 따라가서 섹스를 하고 돈을받앗다. 그러하다 그녀는 창녀엿다

    • BlogIcon 가람빛 2015.03.25 23:41 신고

      입주권을 대규모로 사재기한 투기업자가 곧장 입주권을 돌려달라며 뒤따라온 영희를 가족들에개 통보도 없이 그대로 데려가서는 수면제를 먹였지요.

      '그만둬. 그들 옆엔 법이 있다.' 글쎄요, 영희가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었는지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하는 뮨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에는 입주권을 찾아내 도망치는 영희가, 난쟁이가 아닌 이에게 자의로 굴복하기 위해 따라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9. 2016.08.29 23:00 신고

    저도 이 책을 읽고 많은 것들을 느꼈어요.
    아직 중학생이지만 이 시대때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가람빛님의 글을 읽고 다시한번 이 사회와 그리고 다른 것 등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양심이 우선일까, 부가 우선일까?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린 문제다.


소설속의 동생은 늘 양심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형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세상에는 이런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즉 돈을 모으기 위해서 만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과, 필요하니까 그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버는 사람과, 또 하나는 이건 꼭 필요한 돈도 채
못 벌고서 그 대신 생활을 졸이는 사람들, 신발에다
발을 맞추는 격으로, 형님은 아마 그 맨 끝의 층에
속하겠지요.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만족을 잊은 채 잉여수익을 찍어내는 계층과
자신이 필요한 만큼은 충분히 벌 수 있는 계층.
혹은 그나마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계층.
소설속의 형은 가장 후자쪽에 속할 것이다.
정직한 수익을 추구하는 그러한 인물이다.

'양심과 부' 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위인을
찾는것이 세월이 갈수록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실 모래밭의 소금을 찾는 꼴이다.

누군가는 속임수로 자신의 부를 더욱 축적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이다.

사회가 점점 오발탄과 같이 흘러가고 있다.
총알을 엉뚱한 방향으로 쏘아버린 것이다.
자신의 부를 쫓아 그 방향으로만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신이 원래 쏘아야 할 목표도 잊고선
엉뚱한 곳을 향하여 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 ‘오발탄’의 주인공인 형, 철호는
판자촌 생활에 좋지 못한 환경에 놓이고서도
끝까지 양심에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이 그렇다는 핑계속,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양심을 잊어가는 것은 혹여 아닐까?

 


오발탄

저자
이범선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7-07-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한국문학전집_32. [오발탄] 이범선 단편선 김외곤(서원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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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만든 생산품들을 자신들의 몫도 남겨주지 않고 팔아먹는 농장주인 존스에 불만을 품던 동물들이 급기야 반란을 일으켜 존스를 쫓아내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원칙으로 꾸려나간 농장. 그들의 농장은 나날이 번창한다.

농장에 큰 공을 세워 지도자가 된 나폴레옹과 스노볼. 하지만 그 둘은 늘상 의견충돌이 지나치게 잦았다. 나폴레옹의 눈에 스노볼이 미웠는지, 무력으로 내쫓고 결국 혼자서 지도자의 자리에 군림했다. 독재자로서.

구관이 명관이라던가, 동물들에게 노동을 시키며 농장의 규칙을 좋을대로 뜯어고치고 오히려 존스의 시절보다도 힘겨운 나날을 지내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폴레옹 정권은 적으로 규정했던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며 자신들이 인간이라도 되는 듯 두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인간들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는 나폴레옹. 그러나 동물들은 그들의 차이점을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처음부터 독재자가 될 마음으로 공을 세웠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농장을 되찾으러 온 존스의 일당들을 가장 열심히 맞선 동물중 하나가 바로 나폴레옹 이었다. 그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반란을 일으켜 폭군을 쫓아내고 모두가 공평한 농장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맛본 권력의 오묘한 매력이란 쉽사리 거절할 고작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게 변질되어 버렸다. 그렇게 경멸하던 존스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해 아래 새것 없다고, 역사는 예외없이 반복되어왔다. 북한은 옳지 못한 결과라고 초기의 의도마저 그러할까? 박정희 대통령은 처음부터 독재를 꿈꾸며 시작했을까? 의도가 좋았다 하더라도 쥐어본 권력에 열에 아홉은 모두 타락했으며 이러한 쳇바퀴인 것은 아닐까.

 


동물농장

저자
조지 오웰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01-0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오웬의 [동물농장]이 영국에서 출판된 것은 일본의 항복으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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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세계사 및 민주주의의 역사적 관점에서 나폴레옹에 대해 배운 이후에 소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니 의미가 깊다. 배경지식이 만무한 어릴적에 작성한 독후감이라 되려 읽는 재미가 있다. - 3년 후의 필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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